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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매니아들이 자존심과 명예를 위해 경쟁한 전설로 기록된 역대 슈퍼카들

by dan-83 2023. 10. 12.

 

기술과 생산 방법의 발전으로 인해 자동차는 대중화되었습니다. 20세기 초에는 레이싱을 통해 고성능 차량의 개발과 경쟁이 이루어지며, 최고속도 기록도 계속해서 경신되었습니다. 그러나 세계 대전과 경제 침체로 인해 자동차 산업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랍보르기니, 2억대 슈퍼카 '우라칸에보 RWD' 韓출시

 

하지만 1930년대 후반부터 자동차 산업은 회복되었으며, 포드를 비롯한 제조사들이 대중적인 차량을 생산하였습니다. 전후 시기에는 유럽과 미국에서 자동차 생산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으며, 경제 회복으로 인해 소비자들도 다시 자동차를 구매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동차 산업은 그 후 지속적인 발전을 거듭하여 현재까지 이어져왔습니다. 기술의 혁신과 환경 문제에 대한 관심 등 다양한 요인들이 자동차 산업의 방향성을 결정하고 있습니다. 또한 전기자동차와 같은 친환경 차량의 등장으로 인해 새로운 패러다임이 형성되고 있습니다.

 

칼 벤츠(Carl Benz)1893년에 그의 첫 사륜구동 자동차인 빅토리아(Victoria)를 제작했습니다. 이후 1894년에는 '벤츠 벨로'를 생산하기 시작했습니다. 칼 벤츠는 자신의 벤츠 벨로를 타고 역사상 최초의 자동차 레이스에 참가하였습니다. 프랑스 파리에서 루앙까지 이어지는 120km 레이스 후, 자동차 열정가들은 차량을 고성능으로 튜닝하는 작업에 흥미를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20세기 초, 자동차 제조사와 자동차 열정가들은 승리하는 것이 동차의 판매량을 비약적으로 증가시킬 수 있는 방법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슈퍼카는 대중들의 상상력을 자극했으며, 대중들을 환호하게 했습니다. 고성능 차량이라는 명함을 내밀기 위해서는, 19세기 이전엔 최고속도가 시속80~100km정도면 충분했습니다.

 

하지만 20세기 초반 그랑프리 레이싱을 거치며 시속 130~160km까지 기준이 올라갔고, 이후 최고속도 경신을 위한 차량 튜닝이 발전하면서, 불과 20여년만에 최고속도의 기록은 시속 320km까지 경신되었다. 자동차 제조사들은 계속해서 공도용 또는 트랙용 튜닝 차량을 선보였습니다.

 

Carrol Shelby's  AC Cobra427

 

그러나 세계 1차대전 이후 유가가 고공행진을 하자,스포츠카 산업에도 제동이 걸렸습니다. 1920년대 많은 고성능 머신들이 출시되었지만, 오직 부유한 사람들 만이 소유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1930년대 초 대공황의 여파로 자동차 산업 자체가 침체기를 겪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포드는 침체기를 버터내며 1934년 최초로 V8진을 장착한 차랑을 대랑생산하며 대중에게 선보였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유럽과 미국의 자동차 생산 공장은 전쟁 물자를 생산하는 중요한 기지로 이용되었습니다. 그러나 전쟁이 종료되고 경제가 회복되면서 다시 자동차 생산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때 양산 차량에 최초로 적용된 V8 엔진은 포드의 플랫헤드(Fathead) 엔진입니다. 플랫헤드 엔진은 가격이 저렴하고 토크가 우수하여 많은 시간 동안 고성능 차량에 사용되었습니다.

 

1946, 명국의 '할라드(Alard)'사는 플랫헤드 엔진을 개조하여 장착한 머신을 출시했습니다. 이 차량은 0-100km10초 이내에 달성하며, 최고속도는 시속 160km를 기록했습니다. 그 후, 크라이슬러(Chrysler), 캐딜락(Cadillac), 홀스모빌(Oldsmobile) 등에서 제작된 미국의 머슬카들도 V8 엔진을 사용하였습니다.

 

Jaguar XK 120 Roadster

 

 

이러한 엔진들은 매우 강력한 성능을 가지고 있어 최고속도 시속 193km를 자랑하는 유명한 1948년 재규어(XK120) 로드스터와 같은 차량에 탑재되었습니다.

 

1950년대 경제 호황으로 인해 많은 자동차 제조사들이 미국산 파워트레인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V8 엔진의 넉넉한 토크와 거대하며 요란한 차량에 대한 미국인들의 선호도는 출력 전쟁(output war)으로 이어져갔습니다. 크라이슬러는 1951년 반구형 연소실을 가진 V8 헤미(Hemi) 엔진을 선보여 고출력 전쟁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1955, 쉐보레(Chevrolet)에서는 인기 있는 쉐비 V8(V-8) 엔진인 4.3리터 버전을 출시했습니다. 특히 젊은 층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으며, 쉐비 V8 엔진 탑재 차량 판매 대수는 1,700만대를 기록하였습니다. 몇 년 후, 이 엔진은 기계식 연료 분사 장치(mechanical fuel injection)를 도입하고 배기량도 4.6리터로 확장되었습니다.

 

쉐보레는 새롭게 개발된 V8 엔진의 출력과 성능이 우수함을 주장하였으며, 신형 모델에 해당 엔진을 탑재하여 진행된 테스트에서 그 주장을 입증해냈습니다2차 세계대전 이후 자동차 제조사들 사이에서 벌어지던 경쟁과 혁신적인 개발로 인해 자동차 기술과 성능은 지속적으로 발전해왔습니다.

 

머술카  VS  이국적인 자동차

 

1960년대, 쉐보레(Chevrolet)는 계속해서 고성능 머신을 개발하며 크라이슬러(Chrysler)의 닷지(Dodge) 등과 경쟁했습니다. 이 경쟁을 통해 상대적으로 가벼운 중형 사이즈의 세단과 쿠페에 강력한 엔진을 적용하여 가속력을 향상시킨 차량들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닷지와 플리머스(Plymouth)는 지속적으로 헤미(Hemi) 엔진을 발전시켜 6.9리터 425마력 엔진까지 개발했습니다. 이 엔진에 듀얼 카뷰레터(Dual Carburetor)를 장착하여 실제 출력이 550마력에 달하는 스트릿 헤미 엔진을 탑재한 모델도 출시되었습니다.

 

 

포드, 코브라, 포드 토리노 코브라

 

포드(Ford)는 나스카(NASCAR, 미국의 레이싱 대회)에서 헤미 엔진 탑재 차량인 닷지 데이토나(Daytona)와 플리머스 로드러너(Roadrunner)를 이기기 위해 7리터 슈퍼 코브라 제트 토리노(Torino Talladega Super Cobra Jet Torino Talledega's)를 출전시켰고, 성공적인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는 나스카 주최측에서 너무 강력한 성능을 가진 헤미 엔진 탑재 차량의 출전을 금지하는 조치가 있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승리였습니다.

 

한편, 쉐보레는 454마력의 V8 "빅블록" 엔진을 개발하여 도로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었습니다. 이 엔진은 "(Rat)"라는 별칭으로 알려져 있으며, 최상위 엔진으로서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카마로(Camaro)와 콜벳(Corvette)에 사용된 6.9리터 엔진보다는 성능 면에서 약간 밀렸습니다.

 

1950년대 말부터 1960년대 초까지, 콜벳은 유럽산 스포츠카인 재규어(Jaguar), 페라리(Ferrari) 등과 경합하여 세계에서 가장 빠른 스포츠카로 인정받았습니다.

 

따라서 1960년대에는 미국 자동차 제조사들 간의 경쟁과 혁신이 진행되면서 고성능 머슬카와 유럽산 스포츠카들 사이에서도 치열한 경합이 벌어짐을 알 수 있습니다.

 

 

1933년 설립된 리처드 라이온즈의 'SS CAR'는 1945년부터 재규어로 사명을 바꿨고 많은위기를 버텨왔지만, 현재는 포드에 인수 되었으며 향후 미래가 밝다. (역주: 재규어는 1989년 포드에 인수되었으며, 2008년 다시 인도와 타타 자동차로 인수되었다.)

 

 

1930년대, 알파로메오(Alfa Romeo)의 레이싱 드라이버 및 팀 매니저 출신인 엔조 페라리(Enzo Ferrari)는 공도용 자동차 생산에 처음으로 착수했습니다. 그가 제작한 자동차들은 디자인과 성능 면에서 최고 수준을 자랑했지만, 가격도 매우 높았습니다.

 

당시 페라리의 자동차는 매혹적인 디자인과 뛰어난 속도로 평가받았으며, 스털링 그랑프리에서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페라리는 많은 레이싱 우승을 거두었으며, 유명한 드라이버인 스털링 모스(Sterling Moss)를 영입하여 르망 24시간레이스 등에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항하는 경쟁자로서는 마세라티(Maserati)와 람보르기니(Lamborghini)가 있었습니다. 마세라티는 최고속도 시속 274km를 자랑하는 5000GT와 보라(Bora) B8oa1971년에 출시하여 페라리와 경쟁하였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첫 번째 중앙 배치 엔진 슈퍼카인 '미우라(Miura)'를 생산한 것은 1963년에 설립된 람보르기니였습니다. 이를 계기로 페라리와 람보르기니는 강력한 경쟁자로 남게 되었습니다.

 

30년 동안, 페라리는 다이노(Dino), 데이토나(Daytona), 308 등의 모델을 선보였으며, 람보르기니는 카운타치(Countach) LP400, LP500과 같은 모델들로 페라리에 대항하였습니다.

 

 

포르쉐는 박스터를 통해 대중들이 포르쉐에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 기대했고, 5만 3천달러의 시작가는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박스터는 1997년 출시 이래로 큰 성공을 거두웠다

 

 

1948년 포르쉐(Porsche)356 모델을 출시하여 경주 장면에서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하지만 폭스바겐 기반이 되어 만들어진 356은 경쟁에서 크게 우위를 점할 만큼 강력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1960년대 초에 등장한 카레라(Carrera) 모델은 다른 이야기였습니다. 포르쉐의 전문 지식과 기술력으로 개발된 수평대형 엔진을 탑재한 카레라 911은 강력한 성능으로 주목 받았습니다.

 

1963년부터 출시된 카레라 911은 전형적인 디자인을 유지하면서 동력계통만 발전시켜왔습니다. 이러한 지속적인 진화 과정 속에서 포르쉐는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동력 및 주행성능을 개선했습니다. 리어엔진 스포츠카를 운전하는 쾌감과 함께 오랫동안 포르쉐 팬들에게 사랑받아왔으며, 캡처이고 싶지 않다" ("There is no substitute")의 명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출처 :  슈퍼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