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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을 잡아라 렉서스

by dan-83 2023. 10. 11.

'독일을 잡아라'라는 특명으로 탄생한 렉서스 

렉서스(Lerus)는 토요타의 기존 제품과 구분되는 전혀 새로운 브랜드로 출범해 참신한 제품과 새로운 컨셉트로 세계 자동차 시장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미국에서는 프리미엄 럭셔리 세단인 '1S400'을 선두로 경제적인 력셔리 세단인 'ES'와 고성능 스포츠 세단이 제품 라인업에 추가되고, '운전자에게 참된 기쁨을 선사한다'는 새로운 마케팅 개념을 선보이면서 더욱 확고한 입지를 굳혔다.

 

렉서스 LS 460 (2013)

 

 

 

렉서스는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고 신차 개발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으면서도 품질향상과 고객을 만족을 위래 렉서스만의 기본 정신을 잃지 않는 정직한 고급차 브랜드로 자리매김해왔다.

 

렉서스는 특히 미국과 종동, 유럽 등의 세계시장에서 '세계 최고와 어깨를 겨루는 품격 있는 차를 창조한다'는 이념과 꿈을 실현시키며 10년 남짓의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상과 유례없는 찬사를 받고 있다

 

렉서스는 '완벽을 향한 끊입없는 추구'라는 슬로건을 앞세워 최고급 력셔리 세단의 대명사를 목표로 한다. 도서관보다 조용하다'고 할 만큼 정숙성에 있어 세계 최고 수준인 렉서스는 세계자동차 역사의 거대한 산맥인 토요타 자동차에 그 뿌리를 두고 토요타의 완벽주의 기술철학과 장인정신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렉서스는 품질(Quality)과 안락(Comfort), 품격(Luxury). 첨단기술 (Intelligent Technology), 가치(Value)를 추구하며 '운전의 즐거움, 최고의 품질, 독창적이고 탁월한 제품'이라는 기치 아래 차원 높은 서비스를 통해 이미지를 형성해 왔다.

 

렉서스는 1983년 8월 토요타 최고 간부급 회의에서 세계 제일의 차량을 만들기로 결정한 이래 수많은 연구와 개발을 마치고 1989년 9월 자동차 판매를 시작했다. '렉서스' 라는 브랜드명은 '렉스(ev)'와 력셔(uxury)'의 합성어인데, 여기서 '렉스'는 라틴어가 어원이며 '법'이라는 뜻으로 `기준. 스탠다드'를 의미한다. 즉 렉서스는 '러셔리의 기준'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렉서스의 엠블럼

 

 

일본 최초의 대량생산 기초를 다진 닛산 


닛산(Nissan)자동차는 1933년 설립된 이래 일본분만 아니라 미국, 유럽 등의 전 세계 시장에서 닛산 고
유의 디자인과 수준 높은 품질로 세계 소비자들의 신뢰와 믿음을 받고 있다.

 

닛산의 엠블럽

 

 

일본산업(日本産業) 을 줄인 닛산( 日産 )은 1914년 도코에 세워진 카이신 자동차 공장으로부터 출발한다. 우리나라의 시발과 같은 일본의 제1호 국산차 `DAT'는 당지 공동 창업자인 텐 켄지로, 아오야마  로쿠로 타게우치 메이타로의 이름 가운데 앞의 글자를 모두 넣어 만든 모텔명으로 한 동안 'DAT자동차'로 불리기도 했다. 

 

초기에는 군용트럭을 만들다가 1931년 소평차 '닷선'을 선보였고, 같은 해 닛산그룹이 DAT 자동차를 인수해 자회사인 '닛산자동차'가 출범하게 된다. 

 

닛산 멕시코 지역

 

 

닛산은 1935년 일본 자동차 회사 최초로 자동차 대량생산(Type 15)을 성공시키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지속적인 성장세를 보이며 성능과 품질, 안전, 혁신을 통해 이름을 널리 알리기 시작했다.

 

특히 전쟁으로 인한 기술 공백을 희복하는 기간 동안 닛산은 기술력에서 시장을 선도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닛산은 이 기간 동안 꾸준히 성장하며 튼튼한 조직을 구성하고, 후에 닛산이 세계시 장에서 큰 성장을 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1960년대에는 ' 닷선(Datsun)'이라는 브랜드로 미국에서 판매를 시작했으며 대만에 조립 공장 '위릉자동차(Yulon Motor Co.)'와 멕시코에 '닛산멕시코'를 설립하는 등 해외시장 공략에 나섰다. 1980년대에는 미국과 영국에 두 개의 해외생산기지를 세웠다.

 

닛산 닷선 Blue bird 411 (1965)

 

 

한때 일본의 선두 자동차 기업으로 맹위를 떨친 닛산은 1970년대 세계 최대 자동차 수출업체로 명성을 날렸지만 1973년 석유파동 이후 연속되는 적자로 극심한 재정위기에 처하고 만다. 결국 닛산은 1999년 랑스 르노와 전략적 협력관계를 맺게 되고, 그해 최고운영책임자(COO)로 임명된 카를로스 (Carlos Ghosn)이 '닛산회생계획(NRP)'을 통해 구조조정을 단행함으로써 부활에 성공했다.

닛산의 프리미엄 브랜드 '인피니티'


닛산은 시작부터 '운전자의 가치 있는 경험이 차보다 더 중요하다'는 럭셔리 자동차의 새로운 개념 정립을 목표로 삼았다. 닛산의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 '인피니티(Infiniti)'는 '고성능 럭셔리 자동차'라는 새로운 시장 공략을 목표로 지난 1989년 북미 지역에 처음 진출했다. 

 

시판을 시작한 것은 1989년 11월 8일이지만 인피니티 브랜드 탄생의 배경은 새로운 고성능 럭셔리 브랜드를 만들고자 1985년 설립된 닛산 내부의 비밀 부서, '호라이즌 태스크포스(Horizon Task Force)'에서 시작한다.

인피니티 엠블럽

 

 

인피니티 JS (2013)




당시 미국과 유럽의 럭셔리 브랜드들이 이미 미국 시장을 점령하고 있는 상황에서 뒤늦게 시장에 뛰어든 닛산은 높은 투자비와 큰 위험 요소를 감수해야 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닛산은 대중적인 브랜드에서 나아가 차별화되는 아이덴티티(Identity)를 갖춘 럭셔리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 고민을 시작했다. 

 

이를 위해 '백지 한 장'에서 시작한 호라이즌 태스크포스 팀은 차를 제품으로 바라보는 시각에서 나아가 구매와 소유의 전 과정을 통해 고찰하는, 보다 넓은 관점에서 접근을 시작했다. 그 결과 운전자의 가치 있는 경험을 강조한 새로운 고성능 럭셔리 브랜드 '인피니티'가 탄생했다.

 

모터사이클로 신화를 만든 혼다

 

혼다(Honda)는 창업자인 혼다 소이치로(本田一郞)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한 브랜드다. 혼다 소이치로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불굴의 도전 정신'으로 유명하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잠을 자지 못할 정도로 열정적이었던 혼다 소이치로는 모터사이클로 '월드그랑프리 시리즈'에서 우승을 거머쥐는가 하면 자동차 생산 2년 만에 F1 우승을 하며 브랜드의 명성을 이어갔다. 이와 같이 끝없는 도전으로 현재까지도 혼다만의 독창성과 기술력을 강력한 무기로 삼고 있다.

혼다의 경영철학은 이른바 '혼다이즘(Hondaism)'으로 정의되어 지금까지 경영학뿐만 아니라 이공계, 제조업계의 신화로 여겨지고 있다. 혼다는 고집스러우리만치 독자기술 개발을 고집, 자신들의 기술로 모터사이클 분야에서 착실히 성장했다.

 

이렇게 축적된 기술은 자연스럽게 자동차에 접목되었으며 이로 인해 짧은 기간 동안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룬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오늘날에도 혼다는 하이브리드 자동차, 태양광 자동차 등 새로운 분야에 진출할 때 나름의 독자기술을 이용하고 있다.

 

혼다 소이치로



혼다 브랜드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혼다 소이치로가 혼다기술연구소를 모체로 1948년 혼다기연공업(本田技硏工業)을 설립, 모터사이클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외국기술과 합작으로 자동차나 모터사이클을 개발하던다른 브랜드와 달리 독자기술만을 고집했던 혼다는 모터사이클에서 시작해 차근차근 기술적인 노하우를 쌓아갔다. 1958년 흰 연료탱크에 빨간 엔진을 없은 '커브(Cub)가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고, '드림(Deam)' '벤리(Benly)' 등이 연달아 히트다.

 

이후 유럽 방문길에 들른 영국에서 처음으로 모터사이클 레이스를 접하게 된 소이치로는 모터스포츠 영역에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 어릴 때부터 모터스포츠에 대한 꿈을 가지고 있던 소이치로는 뛰어난 엔진 디자인과 고성능 제품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하게 되었다.

 

혼다 모터 싸이클

 

혼다는 1959년 일본 팀으로는 처음 월드그랑프리 시리즈에 참가해 125cc 경량급 경기에서 6, 7, 8위를 기록했고, 2년 인 1961년에는 세 번째 도전 만에 전설적인 선수 마이크 헤일우드(Mike Hailwood)의 도움으로 125cc와 250cc 클래스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1966년 500cc 그랑프리에서 다시 한 번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게 된다. 월드그랑프리 시리즈 우승으로 혼다는 유럽 시장에서 높은 인기를 모으며 빠르게 성장했다. 같은 시기에 모터스포츠 분야뿐만 아니라 상용 모터사이클 분야에서도 혼다의 브랜드 인지도는 점차 증가한다.

 

혼다의 엠블럼

 

 

1958년 혼다는 모터사이클 경주에서 축적된 기술을 바탕으로 '슈퍼커브(Super Cub)'라는 50cc 경이륜차를 개발했다. 슈퍼커브는 3단 자동변속, 자동 스타터, 안전하고 친근감을 주는 외양이 특징이며. 특히 작은 배기량으로 높은 마력을 내는 엔진을 개발함으로써 100cc급 모터사이클보다 50% 정도의 원가절감 효과를 가져왔다.

 

1959년 말에는 이 제품에 대한 수요가 급증해 혼다 모터사이클 전체 생산량의 60% 가량을차지 할 정도였다. 또 혼다는 슈퍼커브의 성공을 발판 삼아 기존 유통망의 쇄신을 도모했다.

 

즉 대리점들에게 이 제품을 소형 모터사이클의 장점을 극대화해 대형 모터사이클보다 위험성이 적은 자전거로 인식시키려 하였으며 자전거 점포와 같은 소매점에서 직접 판매도 시즈 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1960년에는40%를 상회하는 시장점유율을 기록함으로써 일본 모터사이클 시장을 석권했다.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혼다의 Super Cub C100 (1958)



1959년 혼다 모터사이클은 미국 시장에도 진출하게 된다. 당시 미국 내 모터사이클의 이미지는 대형 모델로 인해 불량스럽고 반항적인 이미지가 강했다. 하지만 혼다는 그와 반대로 실생활에 적합한 작고 가벼운 모터사이클을 중심으로 소형 모터사이클의 다양한 색상과 모델을 내세웠다.

 

또 단정한 용모의 젊은 모델을 기용하고 '상냥한 사람들은 혼다를 탑니다'라는 메시지의 광고를 적극 활용했다. 저렴한 가격에 주차까지 용이한 교통수단임을 강조해 모터사이클에 대한 인식변화에 힘쓴 것이다. 그 결과 1960년대 중반 혼다는 미국 소형 모터사이클 시장의 2/3 가량을 석권하게 되었다.

 

모터사이클 부문에서 큰 성공을 거둔 혼다는 다른 브랜드에 비해 늦은 1960년대에 처음 자동차 산업에서 뛰어든다. 끊임없는 노력 끝에 자동차 산업에까지 진출한 혼다는 '혼다의 전설'로 남은 스포츠카 'S500'과 'S360'을 탄생시켰으며 독자적인 기술을바탕으로 자동차 만들기에 도전, 20년 만에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로 성장했다.

'기술의 혼다'라는 칭호는 창업 이래 지속되어 온 혼다의 연구개발에 대한 열정의 결실이다. 1970년대에는 전 세계가 제1차 오일쇼크로 석유를 사용하는 제품의 연비향상에 집중했다. 

 

특히 미국에서는 '머스키법(Muskie Act)'의 발효로 배기가스 배출을 엄격히 규제하고 있었는데, 1972년 혼다가 '저공해 CVCC 엔진'을 개발하며 세계 최초로 법을 통과하는 자동차를 출시했다. 

 

그 모델이 바로 '시빅(Civic)'이다. 시빅은 혼다의 기술에 대한 역사적인 가치를 빛내주었다. 이후 CVCC 엔진은 혼다의 월드베스트 셀링 세단 '어코드(Accord)' 1세대 모델에도 장착되어 본격적인 혼다 자동차 대중화에 기여했다.

2013 Honda Civic Car 2014 혼다

옹고집으로 만든 스바루

일본의 거대기업 후지중공업(자회사인 스바루(Subaru)는 평소 "차를 만들려면 제대로 만業)의들어야 한다"고 말하며 자동차에 관해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던 켄지 키타(Kenji Kita) 후지중공업 초대회장에 의해 설립됐다. 1

 

954년 항공우주 기술력을 바탕으로 최초의 프로토타입 승용차인 'P-1'이 탄생하자황소자리에 여섯 개 별이 모인 '플레이아데스(pleiades) 성단'의 이름을 따 '스바루'라고 명명했다. '스바루(ㅈr)'는 '지배하다, 모이다'라는 뜻을 지닌 단어로, 예로부터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 고사기(古事記), 만엽집(萬葉集)과 같은 고대문학에 자주 등장하는 별자리 이름 중 하나다.

 

특히 '스바루'라는 이름은 모기업인 후지중공업이 원래 여섯 개였던 회사를 합병해 설립한 까닭에 그 의미가 더욱 깊다고 할 수 있다.스바루의 엠블럼은 푸른 하늘을 바탕으로 황소자리의 여섯 개 별을 형상화한 것으로 지난 2003년 창립 50주년을 기념해 새롭게 리뉴얼됐다.

 

스바루의 엠블럼

 

스바루 P - 1  (1954)



스바루는 특히 지난 반세기 동안 박서엔진(boxer engine)과 대칭형 AWD 시스템 등 독창적인 기술력을 고집하고 있다. 스바루의 대칭형 AWD(all-wheel drive) 시스템은 네 바퀴 모두에 토크(torque, 돌림힘)를 분배하는 풀타임 사륜구동 방식으로 박서 엔진의 힘을 네 바퀴에 골고루 전달해 각 바퀴의 구동력을최대화할 수 있다. 

 

또 구조적으로 좌우 완벽한 대칭을 이루어 뛰어난 균형감과 탁월한 서스펜션(suspensiom, 충격흡수장치) 성능을 나타내는 것이 특징이다. 수평대향형 박서엔진의 또 다른 장점은 직렬엔진이나 V형 엔진에 비해 무게 중심이 낮다는 점이다. 

 

무게 중심이 낮은 박서엔진과 일직선으로 배치된변속기(transmission)는 스바루만의 강력한 파워와 안정적인 코너링, 즉각적인 응답성을 전달하는 심장부역할을 한다. 

 

이와 결합한 스바루의 대칭형 AWD 시스템은 프로펠러 샤프트(propeller shaft)를 중심으로정확히 중간 지점에 파워트레인(구동장치)을 장착함으로써 완벽한 좌우대칭을 실현하며, 그로 인해 차량의무게 중심이 낮아지고 좌우 중량밸런스가 향상되어 직선은 물론 곡선도로에서도 도로에 밀착된 듯 우수한주행안정성을 발휘한다.

 

 

스바루의 대칭형 AWD 시스템

 


스바루의 WRX STI 모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