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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셔리 세단의 처음과 끝, 캐딜락

by dan-83 2023. 10. 9.

럭셔리 세단의 처음과 끝, 캐딜락

캐딜락이 처음 자동차를 만들기 시작한 때는 1902년으로 무려 11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단기 통 10마력 엔진을 장착한 첫 자동차 '모델 A'에서 부터 556마력의 6.2리터 V8 슈퍼차저(Supercharger)엔진을 장착한 CTS-V에 이르기까지 캐딜락은 클래식 자동차 시대 이후 기술 및 스타일링의 혁신과 발전에 공헌해 온 진정한 프리미엄 명차 브랜드 중 하나로 손꼽힌다. 

 

 

미 대통령 의전용 차량으로 이용되는 캐딜락

 

캐딜락의 역사는 미국의 자동차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캐딜락은 지난 110여 년 간 자동차 업계를 주도해 온 기술 혁신과 격조 높은 프리미엄 브랜드의 지위를 가진 브랜드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로널드 레이건,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 등 역대 미국 대통령들은 물론이고, 각국 정상들을 포함한 세계적인 정치가와 외교관, 예술가들이 캐딜락을 애용했다. 

 

엘비스 프레슬리도 캐딜락을 몰았고, 마릴린 먼로는 캐딜락의 뒷좌석을 이용했다. 조선시대 순종의 어차도 캐딜락이었다. 현재 미국 오바마 대통령의 전용차로 애용되고 있는 캐딜락은 한 세기가 넘는 결코 짧지 않은 역사를 거치며 ‘부와 명예 그리고 성공의 상징’으로 수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아오고 있다. 주류에 편향하지 않는 캐딜락만의 정통성을 담는 동시에 진보된 기술과 디자인 철학이 담긴 캐딜락의 가치는 21세기인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쉐보레의 엠블럼


  
     개척 정신과 리더십을 상징하는 아름다운 캐딜락 엠블럼은 캐딜락의 혈통을 보여준다. 캐딜락이란 이름은 17세기 말 디트로이트를 개척한 프랑스의 장군 앙트완 모스 카디야(Le Sieur Antoine de la Mothe Cadillac) 경의 성을 딴 것이다. 캐딜락 엠블럼은 앙트완 모스 카디야 경 가문의 문장에서 유래, 1905년 캐딜락 차량에 처음으로 사용하기 시작했고 30여 회에 걸쳐 변형되었다. 십자군의 방패를 본떠 디자인된 캐딜락 엠블럼은 기품 있는 가문의 용기를 나타내며 지혜를 뜻하는 흑색과 부를 뜻하는 금색이 대비를 이룬다. 적색은 용기와 담대함을, 은색은 청결과 순결, 자비, 풍요를, 마지막으로 청색은 기사의 용맹함을 상징한다.

  

 

헨리 M. 릴랜드


   

  캐딜락은 남북전쟁 당시 엔지니어였던 헨리 M. 릴랜드(Henry M. Leland)에 의해 미국 뉴잉글랜드에서 창립됐다. 남북전쟁 후 디트로이트로 돌아온 릴랜드는 디트로이트 오토모빌 컴퍼니(Detroit Automobile Company)가 정리될 위기에 처하자 이를 인수해 캐딜락 오토모빌 컴퍼니(Cadillac Automobile Company)를 세우게 된다. 캐딜락의 깊은 역사는 1902년 가변식 밸브 타이밍 1기통 엔진을 장착한 프로토 타입의 데뷔로부터 시작된다. 당시 750달러였던 이 자동차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25mpg(약 10.5km)의 연비와 시속 30마일의 성능을 발휘했다.

  

 

캐딜락의 ‘모델 A’



  캐딜락은 1903년 1월 최초의 캐딜락 ‘모델 A’를 뉴욕 오토쇼에 전시해 자동차 회사로서 이름을 알리게 된다. 캐딜락의 첫 차 ‘모델 A’는 단기통 10마력 엔진으로 우수한 성능, 정밀한 기술, 부품 호환성 등으로 미국 상류사회에서 인기를 끌기 시작한다. 이후 1905년 4기통 엔진을 얹은 캐딜락 ‘모델 D’로 바뀌게 된다.

  캐딜락이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으로 자리 잡게 된 배경에는 1912년 선보인 ‘세계의 표준(Standard of the World)’이라는 캐딜락의 슬로건이 있다. 스스로 높은 기준을 만들고 신기술을 통해 이를 뛰어넘어 세계의 표준이 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목표 아래 1914년 세계 최초로 양산형 차량 V8 엔진을 개발하기에 이른다. 캐딜락이 앞선 기술력으로 자동차 역사의 한 페이지를 화려하게 장식했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밀폐형 클로즈 캡이 적용된 캐딜락30 (1910)


     

  또 캐딜락은 1900년대 초반부터 우수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세계의 기준이 되기 시작한다. 1908년 세계 최초로 250개 부품 표준화 및 규격화에 성공한 캐딜락은 같은 해 영국의 황실자동차 클럽으로부터 ‘자동차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듀어 트로피(Dewar Trophy)를 수상하며 객관적으로 기술력을 인정받게 된다. 1910년 지붕과 윈도를 연결한 밀폐형 클로즈 캡 차체를 선보였고, 1912년에는 세계 최초로 전기 모터에 의한 엔진 시동 장치 및 점화 - 라이팅 시스템을 개발해 두 번째 듀어 트로피를 수상했다. 

 

 

 

다양한 기술력이 동원된 세단, 캐딜락 CTS (2012)

 

 

 

일핀(꽁무니를 길게 뺀 디자인) 스타일을 최초로 적용해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 이른바 ‘빅 핀 전성기’를 이끌었다. 캐딜락의 탄탄한 기술력은 캐딜락이 의도한 우아하고 세련된 디자인의 실현을 가능하게 만들었고, 이러한 캐딜락만의 스타일과 가치는 20세기를 지나 21세기에 보다 과감하게 진화했다.

  

 

  새로운 역사를 창조한 크라이슬러와 Jeep, 그리고 닷지

  크라이슬러

  크라이슬러(Chrysler)는 자신을 평생 ‘평범하고 호기심이 많으며 기술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으로 여긴 월터 P. 크라이슬러(Walter P. Chrysler)에 의해 설립됐다. 

 

월터 P. 크라이슬러는 제너럴 모터스에서 뷰익의 사장 겸 관리담당 임원, 뷰익의 대표이사 겸 GM 최초의 부사장을 거쳤으며, 이후 5,000만 달러의 빚을 지고 위기에 처해 있던 윌리스-오버랜드(Willys-Overland) 사의 재건을 맡아 2년 만에 회사의 빚을 1,800만 달러로 줄이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또 크라이슬러는 경영난을 겪고 있던 디트로이트의 맥스웰 모터 코퍼레이션(Maxwell Motor Corporation)의 경영을 맡아 주주들의 동의를 얻은 후 파산 신고를 하고 회사를 경매에 붙여 본인이 직접 회사를 인수했다.

  

 

월터 P. 크라이슬러

 

1922년 크라이슬러는 ‘완전히 새로운 자동차’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차츰 실현시켜 나갔다. 그는 1924년 뉴욕 모터쇼에서 최초의 크라이슬러 차량을 선보이기에 이르렀다. 이는 1933년 GM에 이어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자동차 회사로 성장하는 크라이슬러 코퍼레이션(Chrysler Corporation)의 초석이 되었다.

 

 

1925년 6월 6일, 맥스웰 모터 코퍼레이션은 마침내 ‘크라이슬러 코퍼레이션’으로 재탄생했다. 지금은 1998년 다임러-벤츠와의 합병으로 다임러크라이슬러가 되었지만, 창업자 크라이슬러의 흔적은 ‘크라이슬러’라는 브랜드로 남아 있다.

 

오늘날 크라이슬러는 세단에서 컨버터블, SUV,크로스오버 등 다양한 차종들을 생산하고 있으며, 특히 '미니밴'이라는 세그먼트(Segment)를 창시하는 등 니치마켓(niche market, 틈새시장)공략에도 힘쓰고 있다. 

 

 

크라이슬럼 엠블럼

 

크라이슬러 300 SRT8 (2012)

 

지프

 

'4륜구동'하면 대부분 군용지프를 연상하게 된다. 4륜구동 차량이 그 진가를 발휘하게 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사용한 군용지프에서부터다. 전쟁이 끝난 후 지프에 대한 인기가 높아지자 군용지프를 민간용으로 개조해 생산하기 시작했으며, 이후 4WD(four wheel drive) 차량을 통틀어 ‘지프(jeep)’라는 용어로 통칭할 만큼 일반인에게 지프는 4륜구동 차량의 대명사가 되었다.

 

Jeep 엠블럼

 

 

제2차 세계대전 초 독일은 월등한 기동력으로 미국과 연합군을 당황하게 만들었고, 이에 충격을 받은 미국방성은 독일의 월등한 기동력이 4바퀴 구동차량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되었다. 미국방성은 곧 이러한 차량의 개발을 입찰에 붙여 정식 사양을 공개했고, 아메리카 밴텀(Bantam), 포드(Ford) 그리고 윌리스 오버랜드(Willys-Overland) 등 세 개의 회사가 치열한 경합을 벌였다. 그 결과 윌리스 오버랜드 사가 미국방성과 정식 양산 계획을 맺고, 최초의 지프 모델인 ‘Willys MB’를 양산하기 시작했다.

  이때 만들어진 소형 지프(Jeep)는 튼튼한 차체와 기민한 기동력으로 유럽 전선에서 연합군의 승리를 결정짓는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가장 이상적인 4륜구동 차량임을 입증했다. 특히 지프는 산악전 및 기습작전에서 기대 이상의 성능을 발휘해 연합군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탁월한 성능을 인정받은 지프는 더 폭넓은 소비자들로부터 사랑을 받기 시작했다. 지프는 승용 또는 레저용, 농·축산업용으로 용도를 넓혀갔고, 이어 윌리스 오버랜드사는 1945년부터 군용보다 좀 더 맵시 있게 외관을 다듬은 민수용 지프 CJ-2A를 생산함으로써 CJ(Civilian Jeep)시리즈를 시작했다. 1953년 윌리스 오버랜드사는 카이저사(Kaiser Corporation)에 인수되었고, 1970년 다시 AMC(American Motor Company)로 통합되었다.

    

Willys MB 모델


 

민수용 지프 CJ-2A


  
  현재의 지프는 다임러크라이슬러 산하의 브랜드 명칭이 되었으며 CJ시리즈의 모델 이름은 ‘지프 랭글러(Jeep Wrangler)로 바뀌었다. 그 이후 지프는 4WD의 대명사인 지프 랭글러, 지프 체로키(Jeep Cherokee), 지프 그랜드 체로키(Jeep Grand Cherokee) 그리고 지프 커맨더(Jeep Commander)로 그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지프'라는 이름이 언제부터 어떻게 쓰이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당시 인기 만화 주인공이었던 '뽀빠이'의 캐릭터에서 따왔다는 주장과 포드사의 차량명이었던 'G.P.(General Purpose)'에서 유래되었다는 두 가지 설이 있다. 

 

Jeep Wrangler Moab 모델 (2013)

 

닷지

닷지(Dodge)는 누구보다 대담성과 파워를 추구하는 브랜드다. 숫양의 머리 모양을 형상화한 빨간객 엠블럼으로 대표되는 닷지는 미국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브랜드 중 하나이기도 하다. 

 

 

 

913년 존 닷지(John Francis Dodge)와 호레이스 닷지(Horace Elgin Dodge) 형제에 의해 처음 만들어진 이후, 닷지는 여러 면에서 평범함을 거부하고 시대의 유행을 앞서가는 차였다. 1914년 가을에 등장한 닷지 1호차는 당시 큰 인기를 끌고 있던 포드 T형보다 한 수 위였다. 전기 헤드라이트를 달고 승차감이 좋은 스프링을 장착했을 뿐 아니라 포드 T형이 검은색 한 종류인데 비해 여러 가지 컬러로 출시되어 소비자들의 취향을 만족시켰다. 또 호화로운 실내와 부드러운 승차감, 세계 최초로 차체를 스틸로 제작해 튼튼한 품질을 자랑했다. 여기에 도난방지를 위한 도어 잠금장치와 차량 후미의 스톱 램프(정지등)도 닷지가 처음 장착한 것이었다. 이어 닷지는 세계 최초로 자동차 성능시험장을 만들어 생산된 차마다 각종 주행 및 성능시험을 마친 후 시판해 더욱 큰 인기를 끌었다.

 

미국 머슬카의 상징인 닷지 바이퍼



  1920년 닷지는 포드 다음 가는 자동차 회사가 됐지만, 닷지 형제가 세상을 떠난 후 크라이슬러 그룹의 주요 브랜드로 그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 닷지는 정열적이고 스포티한 승용차 모델, 픽업 트럭 등을 주종으로 생산하고 있으며 네온(Neon), 스트라투스(Stratus), 어벤저(Avenger), 인트레피드(Intrepid), 바이퍼(Viper) 등의 승용차와 캐러밴(Caravan), 다코타(Dakota), 듀랑고(Durango), 램(Ram) 등의 밴과 경트럭 등이 오늘날 닷지를 대표하는 차량이다. 특히 미국 머슬카의 상징으로 미국인들의 취향을 가장 잘 반영한 스포츠카 바이퍼는 전 세계 자동차 마니아들의 이상이기도 하다.

  
출처  :  브랜드를 알면 자동차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