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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브랜드의 역사

by dan-83 2023. 10. 4.

장인의 손길, 롤스로이스

 

돈만 많다고 해서 살 수 없는 세계 유일의 브랜드 롤스로이스(Rolls Royce)는 전구용 필라멘트 제작 회사를 운영하던 프레드릭 헨리 로이스(Frederick Henry Royce)에 의해 탄생했다. 롤스로이스는 대부분의 공정이 수십 년의 경력을 가진 장인들의 수작업으로 이뤄지고 있으며 이 때문에 연간 6,000여대 밖에 생산되지 않는다. 더구나 롤스로이스는 아무리 돈이 많아도 차를 사려는 사람의 자격이 미달로 판단되면 아예 판매를 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롤스로이스는 부와 함께 신분을 과시하는 최고의 차로 명성을 유지해왔다.

 

프레드릭 헨리 로이스


이런 정책은 프레드릭 헨리 로이스와 함께 롤스로이스를 탄생시킨 찰스 롤스(Charles Rolls)가 영국 귀족 출신이라는 점과 맥을 같이 한다. 자동차 딜러이자 유명 레이서로 활약하던 찰스 롤스는 세상에서 가장 조용하고 가장 매끄럽게 나가는 자동차를 목표로 했다.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을 본뜬 라디에이터 그릴, ‘플라잉 레이디'로 알려진 마스트 'Spirit of Ecstasy' 등 가능한 고급스럽고 쉽게 볼 수 없는 독특한 문양들을 사용한 것도 이 때문이다.


롤스로이스의 마스코트Spiritof Ecstasy



하지만 롤스로이스는 벤틀리, 비커스를 거쳐 현재는 BMW에 흡수되어 있다. 벤틀리와 합병한 롤스로이스는 제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비행기 엔진 제작에 뛰어들었지만 비행기 엔진 제작을 하면서 도산했고,1971년 국유화된 뒤 다시 비커스 산하로 흡수됐다가 1998년 BMW와 폭스바겐의 인수 경쟁에서 결국BMW가 차지하는 운명을 맞게 된다. 

 

당시 BMW는 롤스로이스 브랜드에 대한 소유권을 차지했지만 생산시설인 영국 크루 공장은 폭스바겐이 차지해 BMW는 영국 굿우드에 롤스로이스 전용 공장을 새로 만들어야 했다. 롤스로이스는 1925년 데뷔해 6세대까지 만들어졌지만 1991년에 단종됐던 최고급 모델 '팬텀'을새로 개발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롤스로이스의 팬텀

 

 

럭셔리 컨티넨탈, 벤틀리


롤스로이스, 마이바흐와 함께 세계 3대 명차로 꼽히는 벤틀리(Bentley)는 1919년 월터 오웬 벤틀리(Walter Owen Bentley)에 의해 탄생했다. 영국 빈티지카(1919~1930년에 생산된 영국차량)의 대표주자격인 벤틀리의 창업주 월터 오웬 벤틀리는 부유한 집안 출신이다. 원래 벤틀리는 '사람들에게 진흙탕물이나 튀기는 쓸모없는 도구'라고 하며 자동차를 싫어했다고 한다. 하지만 생애 첫 구입한 중고자동차의 매력에 푹 빠졌고, 프랑스에서 자동차를 수입해 판매하던 동생 호레이스 벤틀리(Horace Milner Bentley)와함께 1919년 벤틀리 모터스를 설립했다.

 

 

 

벤틀리의 첫모델Litre



 

벤틀리의 엠블럼

 

 




벤틀리의 첫 모델 3리터(Litre)는 1924년과 1927년 혹독한 내구 레이스로 유명한 자동차 경주인 '르망24시'에서 우승하며 기술력을 인정받았고, 연이어 발표한 6.5리터와 4.5리터 등도 자동차 경주에서 최고의 성적을 거두며 주가를 높였다. 벤틀리는 1931년 경영난으로 롤스로이스사에 매각된 이후 성능과 디자인이 유사하게 바뀌면서 냉소적인 반응을 받았지만 1980년 이후 멀산느와 컨티넨탈과 같이 독자적인 모델을 내놓으면서 화려한 명성을 되찾았다. 국내에서는 재벌 그룹의 오너들이 즐겨 타면서 '회장님 차'로 불리고 있다.

 

 

벤틀리 멀산느(mulsanne)

 

 

비운의 럭셔리 카, 재규어

 

'재규어 자동차(Jaguar Cars)는 1930년대부터 시장이 분화된 고급 세단과 스포츠카로 유명한 영국의 자동차 회사다. 원래 재규어자동차는 미국 포드에 매각되어 볼보, 랜드로버, 애스턴 마틴과 함께 프리미어 오토모티브 그룹(Premier Automotive Group)의 일원이었다. 그러나 포드의 구조 조정으로 인해 인도의 타타 자동차에 팔려 지금은 랜드로버와 함께 타타자동차의 자회사이다. 

 

 

Jugiar SSI (1931)



재규어자동차는 1922년 오토바이광이었던 윌리엄 라이온즈(William Lyons)와 윌리엄 웜슬리(William Walmsley) 두 명이 스왈로우 사이드카 회사(Swallow Sidecar Company)'란 이름으로 설립했고, 제2차 세계대전 후 1945년에는 현재의 '재규어자동차'로 개명했다.

재규어자동차의 엠블럼



재규어자동차의 초기 성공은 1931년 런던 모터쇼에 소개된 SS1을 발표하면서부터다. SS1은 당시 고급자동차 모델이었던 벤틀리를 닮았으나 가격은 벤틀리의 3분의 1밖에 되지 않아 많은 판매고를 올렸다. 이어 1935년 'SS 재규어'를 발표하였고, 1936년에는 시속 160km/h 기록을 돌파한 SS100을 연속해서 발표하였다. 

 

1951년에는 르망 24시 경주에서 우승하기 시작하면서 스포츠카의 새장을 열었다. 이후 1955~1957년까지 3회 연속 르망 24시에서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승승장구하던 재규어는 1960년 버밍행 스몰 암스(BSA: Birmingham Small Arms)로부터 영국의 다임러(DMC: Daimler Motor Company, 독일의 다임러와는 다른 회사)를 인수했다. 이때부터 '다임러'란 이름은 재규어의 고급 살롱 브랜드가 되었다. 

 

1966년 재규어는 브리티쉬 모터(BMC: British Motor Corporation)에 합병되어 브리티쉬 모터 홀딩스(BMH: British Motor Holdings)로 개명했다. 브리티쉬 모터 홀딩스는 다시 1968년 리랜드(Leyland)와 합병해 브리티쉬 리랜드(British Leyland Mortor Company)가 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이때 생산된 모델이 XJ6 살롱인데, 이 모델은 이후 30년이나 생산될 정도로 장수 모델이었고 현재의 XJ 모델이다.

 

1968년형 재규어XJ6

 

 

이후 재정 문제로 고전하던 브리티쉬 리랜드는 1957년 라이더 보고서(Ryder Report)에 따라 국유화의길을 걷게 되었으나 1984년 대처 정부의 민영화 정책에 따라 다시 재규어자동차로 분리되면서 민영화되었다. 민영화 후 1989년 포드에 합병되었고, 이 와중에 설립자 중 한 사람이었던 윌리엄 라이온즈가 1985년사망했다.

 



포뮬러1(F1)에 참가한 재규어레이싱 팀




포드에 합병된 재규어는 링컨 LS의 뒷바퀴굴림 플랫폼을 공용한 세단인 S-타입 모델을 발표하는데,1999년 미국에서 '올해의 상품'으로 선정될 정도로 인기를 누려 재기에 성공하게 된다. 2000년에는 재규어 레이싱(Jaguar Racing) 팀을 만들어 재규어 사상 처음으로 '포뮬라 원(F1) 자동차 경주'에 출전하는 등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2007년에 S-타입의 후속으로 내놓은 후륜구동 어퍼 미들 세단인 XF 이후로는 기존의 클래식한 디자인에서 탈피했고, 신형 XJ도 클래식을 버린 새로운 디자인을 이용한다.

 

 

유럽 북구에서 탄생한 안전의 대명사, 볼보

 

볼보의 엠블럼





1926년 7월 스웨덴의 어느 레스토랑에서 경제학자 아서 가브리엘슨(Assar Gabrielsson)과 당시 최대의 볼베어링 회사인 SFK의 엔지니어 구스타프 라슨(Gustaf Larson)이 함께 저녁식사를 하면서 미래 계획을 구상했고, 냅킨 뒷면에 자동차의 차대 하나를 디자인했다. 

 

이 디자인은 이후 볼보의 최초 모델인ÖV4(Open/Vehicle4. 일명 야곱)의 뼈대가 되었다. 두 사람은 SFK의 지원을 받아 예테보리 근처에 스웨덴 최초의 현대식 자동차 공장을 세우고, 회사명을 라틴어로 '나는 구른다(I Roll)'는 의미의 볼보(Volvo)로명명했다. 

 

볼보의 창업자들은 SFK와의 특별한 관계를 기념하는 의미에서 회전하는 베어링을 형상화한 화살표 문양의 엠블럼을 만들어 차에 달았고, 이후 볼보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볼보의 엠블럼 '아이언 마크(Iron Mark)'는 스웨덴 철강 산업의 수호신 'Mars'의 상징으로 로마 시대에는 '전쟁의 신'으로도 불렸다. 

 

이후 아이언 마크는 계속 발전하면서 약 80여 년간 이어져 왔다.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지난 2006년 새롭게 단장된 아이언 마크는 볼보의 강인하고 단단한 이미지와 더불어 현대적이고 프리미엄한 이미지를 보다 발전시키면서 동시에 감성적인 가치를 강화했다.

 

야곱





볼보의 설립자들은 스웨덴이 추운 나라이고 도로 사정도 좋지 않았기 때문에 가장 먼저 안전에 대해 신경을 쓰게 되었다. 볼보 자동차의 기업이념이 안전에 중점을 두고 '안전(Safety), 품질(Quality), 환경(Environment)'이 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 기인한다.

강력한 차대와 활축, 그리고 긴 원통형 스프링을 앞뒤로 장식하는 미국식 디자인을 기초로 해 제작된 볼보의 최초 모델 '야곱은 4기통 엔진으로 최고속도 90km/h, 정상 주행속도 60km/h를 기록한 볼보의 첫 모델이며, 1928년 4월에는 6기통 PV651 이 나왔다. PV651 은 길이와 폭이 더 커진 자동차로 야곱보다 강한 프레임이 장착되었다. PV651 은 더욱 증가한 엔진 출력으로 매우 좋은 반응을 얻었으며 볼보가 진출을 희망했던 택시 시장에서 특히 호평을 받았다.

 

 

 

볼보의 PV651




제2차 세계대전 중 볼보는 스웨덴 군용차량 생산체제로 전환하여 비도로 주행용 차량 등을 생산하는 데 전념하는 한편 소형차 PV444를 개발해 볼보의 실질적인 전환기를 마련했다. PV444 개발 과정에서 볼보는 세계 최초로 안전한 차체와 라미네이트(여러 장의 판유리 사이에 플라스틱의 중간층을 끼워 접착한 유리) 된 자동차 유리를 선보였다. 

 

안전에 관한 개발은 PV444 후속 모델인 PV544 및 볼보 121 아마존에 이르러 더욱 발전되었다. 1959년에는 삼점식 안전벨트를 최초로 개발해 안전 면에서 최고의 기술력을 보유하는 기틀을 마련한다. 볼보는 1974년 240/260 시리즈가 생산되면서부터 안전에 관한 세계 자동차 업계의 선두주자로 부상했다.

 

 

 

볼보의 PV444



"자동차는 사람에 의해 운전됩니다. 따라서 볼보에서 제작하는 모든 것은 '안전'이라는 지상과제를 기본으로 해 만들어지고 있으며 이는 영원히 지속될 것입니다"라는 볼보의 창업자 구스타프 라슨과 아서 가브리엘슨의 철학은 2010년 중국 지리(吉利)자동차와의 합병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다. 

 

1959년 삼점식 안전벨트, 1964년 세계 최초의 후면방향 장착 어린이 안전시트 원형 개발, 1972년 세계 최초의 후면방향 장착 어린이 안전시트 개발, 1974년 충격흡수식 범퍼 장착, 1984년 급제동 방지 브레이크등, 1994년 세계 최초 사이드 에어백 및 측면보호 시스템 등을 개발해 자동차에 적용한 것도 바로 볼보다.

 

 

볼보S60 Polestar(2013)



출처  :  브랜드를 알면 자동차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