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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를 알면 자동차가 보인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 자동차 브랜드의 치열한 각축장이 되었다.

by dan-83 2023. 9. 30.

자동차 브랜드의 발전

자동차를 만드는 회사는 몇 개나 될까?

 

세계자동차공업협회(OICA: Organisation Internationale des Constructeurs d'Automobiles)37개 회원국, 그리고 우리에게 익숙한 자동차 브랜드는 대략 60여 개 정도가 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현대자동차 말고도 스포츠카 스피라를 만드는 어울림모터스, 기아자동차의 경차를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으로 납품하는 동희오토, 전기자동차를 만드는 레오모터스와 같은 기타 자동차 제조사와 트럭 전문회사인 타타대우, 버스를 전문으로 하는 대우버스 등이 더 존재한다. 따라서 이와 같이 전 세계에 알려지지 않은 제조사를 모두 합치면 무려 1,000여 곳이 넘는다.

 

 

국산차 마크 종류 및 엠블럼

 

 

특이한 점은 1769년 증기기관을 이용하는 최초의 자동차가 인류에게 소개되고, 이어 가솔린을 사용하는 내연기관이 처음 발명된 지 100여 년 이상이 지났지만 자동차 역사의 시작에 섰던 브랜드들이 여전히 건재하다는 것이다. 메르세데스 벤츠, BMW, 아우디, 포드, 폭스바겐, 시트로엥 같이 세계 자동차 산업을 좌지우지하는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의 대부분이 100년 이상의 기업 역사를 갖고 있다.

 

여기서 또 재미있는 것은 이들 자동차 회사의 탄생과정이다. 물론 창업주의 이름을 그대로 따거나 계열사의 하나로 시작하면서 모()기업의 사명이 그대로 불리기도 하고 정치적 상황에 맞춰 만들어진 것이 대부분이긴 하지만, 그래도 수십억 달러의 가치로 평가 받고 있는 일류 자동차 회사들이 아닌가! 브랜드를 알면 상품이 보이고 트렌드도 보인다고 한다. 자동차의 세계는 그중에서도 유독 브랜드의 힘이 큰 곳이다. 디자인과 성능을 한 마디로 표현하는 것도 어쩌면 브랜드인지도 모른다.

 

시발에서 포니, 한국의 자동차 브랜드 변천사

 

기아의 삼륜차

 

외국에서 만들어진 자동차가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것은 언제일까? 1903년 고종 황제가 즉위 40주년을 맞아 미국 공관을 통해 들여온 포드의 A형 리무진이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 역사이자 최초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당시 조선을 강점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던 일본인들이 이보다 앞서 자동차를 타고 다녔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 자동차가 처음 소개된 시점은 그보다 먼저 시작됐을 것으로 보는 사람들도 많다.

 

 

고종 황제의 의전용 어차로 들여온 포드 A형

 

 

 

해방이 되고 6.25전쟁을 겪으면서 미군들이 사용하던 군용차를 개조한 시발(始發)자동차가 나오기까지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은 전적으로 수입차에 의존해왔다. 따라서 국내 자동차 산업의 시작은 1962년 기아자동차의 전신인 기아산업이 최초의 3륜 화물차인 ‘K-360’을 생산한 데서 시작되었고, 1967년 현대자동차가 설립되어 최초의 국산차 포니가 등장하면서 본격적인 시대가 열렸다고 볼 수 있다.

삼륜자동차 K - 360

 

 

 

아시아 최고의 기술을 의미하는 기아(起亞)자동차는 해방 직전인 1944년 설립된 경성정공에서 자전거 제조를 시작으로 자동차 산업에 진출했다. 당시의 자동차는 창업주였던 김철호 선생이 1922년 일본 오사카에서 삼화제작소를 설립, 자동차와 자전거 부품을 생산하면서 얻은 자본과 기술로 만들어졌다.

 

한국에 돌아온 김철호는 일본을 능가하는 아시아 최고의 기술로 자동차를 만들겠다는 신념으로 1950년 사명을 기아산업으로 바꿨고, 1962년 삼륜차로 유명한 최초의 화물차 ‘K-360’을 만들어냈다. 1999년 외환위기를 극복하지 못해 현대자동차 그룹에 흡수가 되기는 했지만, 한국 자동차 산업의 시작은 기아자동차라 보는 것이 마땅하다.

 

 

 

현대자동차의 포니

 

196712월 미국 포드자동차와 합작회사로 출발한 현대자동차는 창업자인 고 정주영 회장이 1940년대 초 서울에서 시작한 정비공장 아트서비스에서 시작했다. 정주영 회장은 196712월 자본금 1억 원으로 현대자동차를 설립했고, 19685월 울산에 연간 3,500대의 자동차를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을 세웠다. 그리고 포니에 앞서 국산화율 21%코티나 1600D’를 처음 생산했다.

 

 

현대의 포니

 

 

 

이어 1976년 국내 최초의 자체 모델로 개발된 포니는 국내 판매는 물론 해외 수출까지 하면서 세계에 현대자동차의 존재를 알리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오늘날 현대자동차가 세계 4위의 자동차 기업으로 성장하는 기틀은 이때 마련됐다고 볼 수 있다. 당시 대당 229만 원에 판매된 포니는 1,238cc 4기통 미쓰비시 새턴엔진을 탑재하고 최대출력은 80마력에 불과했지만 국내외에서 상당한 주목을 받았다.

 

쌍용자동차와 코란도

 

기업 역사에서 유난히 부침을 거듭했던 쌍용자동차는 비운의 브랜드 역사를 갖고 있다. 19541월 하동환 자동차제작소로 출발한 쌍용자동차는 19675월 신진자동차와 업무 제휴를 시작해 19744월 신진지프자동차공업을 합작설립했다.

 

그해 5AMC(American Motors Corporation)와 기술 계약을 체결하고 10월에는 하드탑, 소프트탑, 픽업 등 다양한 신진지프 모델을 선보였다. 신진지프는 훗날 코란도의 전신으로 정통 오프로더의 초석이 되는 모델이다. 그리고 1977년 하동환자동차는 동아자동차, 1981년 신진자동차는 거화자동차로 상호를 변경한다.

 

 

쌍용자동차 코란도

 

 

 

거화는 19833월 자체 생산한 지프에 코란도라는 새 이름을 붙였다. 코란도는 한국인은 할 수 있다(Korean can do)’라는 뜻을 지닌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또 다른 의미로 한국인의 의지와 힘으로 개발한 자동차(Korean do it)’ ‘한국 땅을 뒤덮는 자동차(Korean land over)’ ‘한국을 지배하는 자동차(Korean land dominator)’ 등 여러 뜻을 갖고 있다.

 

198412월에는 동아자동차가 거화를 인수하고, 198611월 다시 쌍용그룹이 동아자동차 경영권을 인수하면서 지금까지 쌍용자동차로 불리고 있다. 중국 상하이자동차가 쌍용자동차를 인수하고 코란도무쏘라는 모델명을 액티언카이런으로 바꿨지만 다시 인도 마힌드라 그룹으로 주인이 바뀌면서 코란도는 화려하게 부활했다.

 

코란도는 1990년대 대학생들이 마음껏 타보고 싶어 쌍용자동차에 입사를 했다는 이야기가 돌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누렸으며, 현재 한국에서 생산되는 자동차 모델 중 가장 긴 브랜드 역사를 갖고 있다.

 

대우자동차

 

1976GM코리아가 경영난을 겪자 한국개발은행이 주식을 매입하게 되고, 이때 새한자동차로 상호가 변경된다. 이어 1983년 옛 대우그룹이 경영에 참여하면서 출범한 대우자동차는 프린스와 르망, 티코 등 수많은 명작들을 만들어 냈다. 대우자동차는 한때 국내에서 현대자동차를 위협하는 브랜드로 성장하면서 GM과의 합작관계를 청산하는 등 승승장구했지만 2001년 다시 경영권을 넘기게 된다

 

애우의 경차 Tico

 

 

그리고 2002‘GM대우오토앤테크놀로지로 다시 출발한 이후, 주로 경소형차 부문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의욕적으로 출시한 준중형, 중형급 신차가 시장에서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하면서 새로운 변화가 절실했던 GM대우는 세계적인 브랜드 쉐보레를 도입, 사명에서 대우를 완전히 빼 버리고 한국GM’으로 회사 이름을 바꾸게 된다. 1955년 부산에서 미군 차량을 수리하던 신진공업사로 출발해 가장 왕성하게 세계 시장을 누빈 대우자동차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 것이다.

 

삼성자동차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오랜 숙원에 따라 1995년 출발한 삼성자동차는 일본 닛산과 기술제휴로 시작했다. 닛산의 설비와 부품을 수입해 조립하는 수준에서 출발했지만 1998년 출시한 모델 SM5는 차별화된 디자인과 삼성 브랜드에 대한 신뢰가 바탕이 되어 현대자동차 쏘나타를 위협할 정도로 인기를 모았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를 버티지 못하고 결국 닛산과 제휴관계에 있는 프랑스 르노사에 매각되고 만다. 지금은 삼성과 전혀 관계가 없지만 삼성그룹에 매년 적지 않은 로열티를 지급하는 것도 결국은 브랜드 가치면에서 효율성이 크다고 보는 것이다. 만약 르노삼성자동차에서 삼성을 뺀다면 지금과 같은 브랜드 효과를 거둘 수 없기 때문이다.

 

 

 

삼성의 SM5

 

국산차를 위협하는 수입 브랜드의 급성장

 

1987년 정부가 자동차 수입을 공식 허용하기 이전까지 수입차는 권력자들과 부유층, 그리고 인기 연예인들의 전유물이었다. 그리고 19884월 시장 규제가 완전히 개방되면서 본격적인 수입차 시대가 열리게 된다. 현대자동차와 대우자동차,

 

그리고 기아자동차와 쌍용자동차에 익숙해져 있던 국민들은 국내에 처음 진출한 메르세데스 벤츠와 아우디, 폭스바겐, 볼보, BMW 등 지금까지 이름만 들었던 세계적 브랜드를 직접 바라보면서 국산차와는 차원이 다른 성능이나 디자인 등에서 탄성을 자아냈다. 이윽고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본격적인 마이카(My Car) 시대가 열리면서 자동차는 곧 모든 사람들의 꿈이 되었다.

 

인천항에 하역 중인 수백 대의 수입 자동차

 

국산 메이커의 성장과 함께 수입 자동차의 위상도 최근 몇 년 사이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1988년 연간 263대에 불과했던 수입차의 판매 대수는 이듬해인 19891,293대로 늘어났다. ‘외제차 선호, 과소비라는 부정적인 사회 여론으로 수입차를 갖고 있으면 세무 조사를 받는 일까지 발생하면서 한때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2011년에는 사상 처음 판매 대수 10만 대를 돌파하며 무섭게 성장하고 있다.

 

 

김흥식 현[오토헤럴드] 편집장

 

 

오토헤럴드편집장.

 

1992년 교통신문에서 처음 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교통 분야를 주로 취재해 왔으며 2003년부터 자동차 팀장으로 근무했고, 2011년 웹진 오토헤럴드를 창간해 편집장을 맡고 있다. MBC, KBS 등의 시사 프로그램에 다수 출연했고, 현재 대구교통방송에서 자동차를 포함한 주요 교통뉴스를 전달하고 있다.